우리나라 최초의 사제 (축일 : 7월 5일)
김대건은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심했던 1821년 충청남도 내포 솔뫼(당진)에서 독실한 천주교의 신자인 김제준의 아들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는 50세 때, 천주교에 입교하였는데, 천주교 박해로 여러차례 검거되어 고초를 겪다가 1718년 옥중에서 순교했다.
이에 김대건의 할아버지는 가족들을 데리고 경기도 용인으로 이주하였다.
아버지도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1839년 가해박해 때 한양 서소문 밖에서 순교했다.
이같은 순교자의 집안에서 자란 김대건은
1836년, 프랑스 모방에게 세례를 받고 신학생으로 뽑혔다.
김대건은 최방제 등과 함께 마카오로 가, 그곳에 있는 파리 외방 선교회에서 프랑스어, 라틴어, 중국어, 신학, 그리고 철학 등 새로운 학문을 두루 배웠다.
공부를 마친 김대건은 가해박해 이후로 탄압이 계속되고 있는 우리 나라로 들어오려고 했으나, 두 번이나 실패했다.
1845년 1월 비로소 국경을 넘어 한양에 몰래 들어왔으나,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매우 거세어서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상하이로 건너갔다.
그리고 그 해 8월,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 서품을 받음으로써 김대건은 우리 나라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
신부가 된 김대건은 프랑스의 페레올, 다블뤼 주교와 함께 상하이를 떠나 충청남도 강경으로 몰래 숨어 들어왔다.
그리고 방방곡곡을 돌면서 비밀리에 전교 활동을 펼쳤다.
김대건은 이듬해 동료 선교사들이 국내로 들어올 수 있는 비밀 입국 통로를 알아보기 위해 백령도 부근을 돌아보다가 붙잡혀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김대건은 몇몇 대신들의 부탁으로 옥중에서 세계 지리에 관한 책을 만들었다. 또, 영국에서 만든 세계 지도를 번역하기도 했다.
이후, 여섯 차례에 걸쳐 심한 고문을 받다가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김대건은 신부들과 교우들에게 보내는 유서를 남긴 뒤,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김대건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로 천주교에 대한 모진 박해를 무릅쓰고, 천주교 교리와 문화를 전파하다 죽은 순교자이다.
김대건 신부는 1984년 한국 가톨릭 200주년을 맞아, 우리 나라에 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다른 우리나라 순교자 102명과 함께 성인으로 시성되었다.